단팥빵, 추억의 달콤한 온기
그때 그 맛
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작은 빵집이 있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갈색의 둥근 빵들이 저를 유혹했습니다. 단팥빵 하나에 300원. 용돈을 아껴 모은 동전들을 손바닥에 세어보며 망설이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빵집 아저씨는 항상 따뜻한 미소로 갓 구운 단팥빵을 종이봉지에 담아주셨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참을 수 없어 길 한복판에서 한 입 베어 물던 순간. 부드러운 빵 속에서 터져 나오는 달콤한 팥소의 온기가 입 안 가득 퍼지며, 세상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할머니의 손맛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할머니 댁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끔 직접 단팥빵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시장에서 사온 팥을 정성스럽게 삶고, 설탕과 소금을 넣어 달콤짭짤하게 조린 팥소.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할머니의 손은 여전히 야무지셨습니다.
오븐이 없던 시절, 할머니는 큰 냄비에 물을 끓이고 그 위에 찜통을 올려 빵을 쪄주셨습니다. 뚜껑을 열 때마다 피어오르는 하얀 김과 함께 퍼지는 고소한 냄새. 할머니표 단팥빵은 빵집 것보다 투박했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의 깊이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며 점점 단팥빵과 멀어져 갔습니다. 패스트푸드와 카페 음료가 일상이 되었고, 단팥빵은 어느새 '촌스러운' 간식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서구식 디저트에 익숙해진 입맛에 단팥의 소박한 단맛은 밋밋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전통 빵집에서 마주친 단팥빵 한 개. 그 순간 모든 기억이 물밀듯 되살아났습니다. 어린 시절의 설렘,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주는 위안.
다시 찾은 소중함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단팥빵이 주는 것은 단순한 당분의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마법의 열쇠였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기억이었습니다.
요즘도 가끔 빵집에서 단팥빵을 사 먹습니다. 첫 입을 베어 물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단팥빵의 묵직한 위로감.
에필로그
단팥빵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큼 예쁘지도 않고, 트렌드를 선도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소박함 속에 담긴 진실한 맛과 기억들은 그 어떤 고급 디저트보다 값집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학교 앞 빵집에서 용돈을 털어 단팥빵을 사 먹고 있을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도 언젠가 이 달콤한 기억이 인생의 소중한 한 페이지가 되길 바라며, 저는 다시 한 번 단팥빵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